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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축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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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4개 축구 협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협회는 별도의 국가대표팀을 운영한다. 1872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첫 국제 경기가 열렸고, 1886년 국제 축구 연맹 이사회(IFAB)가 결성되어 홈 네이션 간의 경기를 조정했다. 1900년과 1908년, 1912년 하계 올림픽에서 영국 단일팀이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이후 각 협회 간의 갈등으로 단일팀 구성이 어려워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개최국 자격으로 단일팀을 구성했으나,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반대로 잉글랜드와 웨일스 선수들로만 팀을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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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축구 국가대표팀
축구 국가대표팀 정보
FIFA 코드UK, GBR
웹사이트없음
감독없음
주장없음
최다 출장 선수빌리 리델, 스탠리 매튜스 (각 2회)
최다 득점 선수윌프 매니언, 토미 로턴, 브라이언 더글러스 (각 2회)
FIFA 랭킹해당 없음
첫 경기
날짜1947년 5월 10일
상대유럽 올스타
결과영국 6 – 1 유럽 올스타
장소영국, 글래스고
최대 점수차 승리
날짜1947년 5월 10일
상대유럽 올스타
결과영국 6 – 1 유럽 올스타
장소영국, 글래스고
최대 점수차 패배
날짜1955년 8월 13일
상대유럽 올스타
결과영국 1 – 4 유럽 올스타
장소영국, 벨파스트

2. 배경

흰색: 잉글랜드
파란색: 스코틀랜드
빨간색: 웨일스
녹색: 북아일랜드]]

1863년 세계 최초의 축구 협회인 잉글랜드 축구 협회(FA)가 창설되었을 때, 그 지리적 관할 구역은 명확하지 않았다. 잉글랜드만을 다루는지, 영국 전체를 다루는지, 대영 제국 전체를 다루는지, 혹은 전 세계를 다루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었다. 이 문제는 1873년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SFA)가 설립되면서 해결되었다.

이후 세 번째 국가 축구 협회인 웨일스 축구 협회(FAW)가 1876년에, 네 번째인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가 1880년에 설립되었다. 이에 따라 축구는 영국 구성국 또는 "홈 네이션" 각각에 대한 별도의 협회와 국가대표팀 체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영국 축구 협회'는 결성되지 않았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첫 국제 경기는 1872년에 열렸으며, 이는 축구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전이었다. 홈 네이션들은 1886년 팀 간의 경기를 조정하기 위해 국제 축구 연맹 이사회(IFAB)를 결성했다. 국제 축구 연맹(FIFA)는 1904년 비영국 협회들에 의해 결성되었고, 1913년까지 홈 네이션들은 FIFA에, FIFA는 IFAB에 속하게 되었다. 1921년 아일랜드 분할 시기에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가 IFA에서 분리되어 그 권위에 이의를 제기했다.

1923년, IFAB와 FIFA 간의 합의에 따라 FAI는 아일랜드 자유국을, IFA는 북아일랜드를 대표하게 되었으며, FIFA는 홈 네이션 간의 관계가 자신의 관할 밖에 있다는 데 동의했다.[1] 홈 네이션들은 아마추어 선수에 대한 급여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1928년 FIFA에서 탈퇴했고(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이전에도 다양한 유럽 팀과 국제 경기를 치렀음), 세 번의 FIFA 월드컵에 불참한 후 1946년에 다시 FIFA에 합류했다. 이 때문에 각 대표팀은 1950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다.

홈 네이션 중에서는 잉글랜드만이 국제적으로 주요 성공을 거두었는데,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스코틀랜드는 8번의 월드컵 본선과 4번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진출했지만, 어떤 국제 대회에서도 조별 예선을 통과한 적이 없다. 웨일스는 1958년 FIFA 월드컵 이후 2022년 FIFA 월드컵에서야 다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으며, UEFA 유로 2016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했다. 북아일랜드는 1986년 FIFA 월드컵 이후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이러한 성과 차이는 때때로 단일 영국 국가대표팀 창설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2006년 6월의 한 통계 분석은 영국 국가대표팀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보다 우승할 가능성이 3분의 1 더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2] 반면, 이러한 계획의 반대자들은 홈 네이션 팬들의 기존 축구 정체성을 단순히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영구적인 영국 국가대표팀 창설에 대한 지지는 지금까지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제안은 종종 가설적인 성격을 띠지만, 잭 스트로[3]와 토니 뱅크스[4] 같은 저명한 정부 장관들에 의해 제기되기도 했다. 2014년 7월, 잉글랜드가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둔 후, 보수당 국회의원 로렌스 로버트슨은 "영국 축구 팀"을 요구하는 조기 제안을 제출하기도 했다.[5][6]

3. FIFA 월드컵 및 대륙별 선수권 대회

국제 축구 연맹(FIFA)은 영국 내에서 4개의 축구 협회, 즉 잉글랜드 축구 협회(FA),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SFA), 웨일스 축구 협회(FAW),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IFA)를 각각 독립된 회원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에 더해 몬트세랫 축구 협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축구 협회, 케이맨 제도 축구 협회,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 축구 협회, 버뮤다 축구 협회, 앵귈라 축구 협회 등 영국의 해외 영토 6개 협회 역시 FIFA 회원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구조 때문에, 영국 단일 축구 국가대표팀은 FIFA 월드컵이나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와 같은 FIFA 또는 대륙 연맹 주관의 주요 국제 대회 본선 및 예선에 참가하지 않는다. 대신 각 홈 네이션스(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대표팀이 개별적으로 대회에 참가한다. 영국 대표팀은 과거 몇 차례 친선 경기를 가진 적은 있으나, 공식적인 국제 대회 출전 기록은 없다.

월드컵 본선에서 홈 네이션스 팀 간의 대결이 이루어진 사례도 있다. 2022년 FIFA 월드컵 조별 리그에서 잉글랜드웨일스가 맞붙었으며, 이 경기에서는 잉글랜드가 승리했다. 잉글랜드는 해당 대회에서 8강까지 진출했으나, 웨일스는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한편, 하계 올림픽올림픽 축구 종목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영국 내에서 영국 올림픽 협회(BOA)만을 국가 올림픽 위원회로 인정하기 때문에, 홈 네이션스 4개 협회가 개별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 과거 그레이트 브리튼 올림픽 대표팀으로 11번(비공식 포함 12번) 올림픽에 참가했으나, 이는 주로 잉글랜드 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었다.

자국에서 개최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예외적으로 영국 단일팀(남자 U-23, 여자 성인)이 구성되었다. 남자팀은 잉글랜드 출신 13명과 웨일스 출신 5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 선수는 포함되지 않았다.[30] 여자 대표팀은 잉글랜드 출신 16명과 스코틀랜드 출신 2명으로 구성되었고, 웨일스와 북아일랜드 선수는 없었다.[31] 런던 올림픽은 영국 남자 대표팀의 12번째, 여자 대표팀의 첫 번째 올림픽 출전이었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단일팀을 구성하려 했으나,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의 반대로 무산되었다.[32]

역사적으로 잉글랜드 축구 협회는 1863년에 세계 최초로 설립되었으며, 이후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1873년), 웨일스 축구 협회(1876년),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1880년)가 차례로 설립되면서 영국 내 각 지역별로 축구가 발전했다. 이들 홈 네이션스 협회들은 선수 급여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1920년 FIFA를 탈퇴했다가 1946년에 복귀했으며, 이로 인해 1950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다.

홈 네이션스 중에서는 잉글랜드가 1966년 FIFA 월드컵에서 우승하며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코틀랜드는 월드컵 본선에 8번, 유럽 선수권 본선에 4번 진출했지만 조별 예선을 통과한 적은 없다. 웨일스는 1958년 FIFA 월드컵 이후 2022년 FIFA 월드컵에서야 다시 본선 무대를 밟았고, 북아일랜드는 1986년 FIFA 월드컵 이후 본선 진출 기록이 없다. 이러한 각 팀의 국제 대회 성적 편차 등으로 인해 때때로 단일 영국 대표팀 구성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잭 스트로[33]토니 뱅크스[34]와 같은 정치인들이 이러한 제안을 한 바 있으나, 각 홈 네이션스의 정체성을 중시하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실제 추진되지는 못하고 있다.

4. 영국 단일팀 구성 논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영국1900년부터 1960년까지 단일 팀으로 올림픽 축구 예선에 참가했으며, 이 기간 동안 세 차례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러나 FIFA 월드컵의 인기가 높아지고 영국 내 4개 축구 협회(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간의 갈등이 커지면서 1964년부터는 올림픽에 단일 팀으로 참가하지 않았다.[43]

세계 최초의 축구 협회인 잉글랜드 축구 협회(FA)는 1863년에 창설되었으나, 그 관할 범위가 잉글랜드인지, 영국 전체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1873년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SFA), 1876년 웨일스 축구 협회(FAW), 1880년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 현재의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가 차례로 설립되면서 각 영국 구성국(홈 네이션)별로 협회와 국가대표팀이 운영되는 방식으로 정리되었다. 홈 네이션 간의 경기를 조정하기 위해 1886년 국제 축구 연맹 이사회(IFAB)가 결성되었고, 1913년에는 홈 네이션 협회들이 국제 축구 연맹(FIFA)에 가입했다. 그러나 아마추어 선수 자격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1928년 FIFA를 탈퇴했다가 1946년에 다시 합류했다. 이로 인해 영국 팀들은 1950년 FIFA 월드컵 이전까지 월드컵에 참가하지 않았다.[1]

이후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에 진출하게 되면서 '팀 GB'(Team GB)라는 이름으로 단일 팀을 구성했다.[49] 하지만 북아일랜드스코틀랜드 축구 협회가 선수 차출을 거부하여 사실상 잉글랜드웨일스 선수들로만 팀이 꾸려졌다. 이 대회에서 영국 단일팀은 카디프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끝에 탈락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에는 여자 축구 종목에만 단일 팀으로 참가했다.

영국 단일팀 구성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잉글랜드1966년 FIFA 월드컵 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는 월드컵이나 유럽 선수권 대회 본선에 진출하더라도 조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하는 등 국제 대회 성적이 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단일팀을 구성하면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로 2006년 한 통계 분석에서는 영국 단일팀이 2006년 FIFA 월드컵에서 잉글랜드 단독팀보다 우승 확률이 3분의 1 더 높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했다.[2] 노동당 소속의 잭 스트로[3][33], 토니 뱅크스[4][34]와 같은 정치인들이 단일팀 구성을 제안한 바 있으며, 2014년 잉글랜드가 2014년 FIFA 월드컵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자 보수당 소속 로렌스 로버트슨 의원도 영국 단일팀 구성을 촉구하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5][6]

그러나 단일팀 구성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각 홈 네이션 팬들이 가진 고유한 축구 정체성을 성적 향상이라는 명목으로 희생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까지 영구적인 영국 축구 단일팀 구성에 대한 지지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5. 올림픽

영국국제 축구 연맹(FIFA) 주관 대회에서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의 개별 축구 협회 대표팀으로 참가하지만, 하계 올림픽올림픽 축구 종목은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 규정에 따라 영국 올림픽 위원회(BOA) 소속의 단일팀으로만 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로 인해 영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는 독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초기 올림픽에서 영국 단일팀은 1900년(당시 비공식 종목), 1908년, 1912년 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등 성공적인 모습을 보였다.[22][23] 그러나 FIFA 월드컵의 인기 상승, 영국 내 4개 축구 협회 간의 입장 차이, 그리고 잉글랜드 축구 협회(FA)가 1974년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 구분을 폐지하면서[43] 영국 단일팀의 올림픽 참가는 1972년 하계 올림픽 예선을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중단되었다.

2012년 하계 올림픽런던에서 개최되면서 영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권을 얻었고, 오랜 논의 끝에 단일팀(Team GB)을 구성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 웨일스 축구 협회는 FIFA에서의 독립적 지위 약화 우려 등으로 참가를 꺼렸고,[24][25] 결국 남자팀은 잉글랜드웨일스 선수들 위주로,[42][30] 여자팀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다.[31] 이 대회에서 영국 남자 대표팀은 8강전에서 대한민국에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이후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다시 단일팀 구성이 무산되었고,[32] 2020년 하계 올림픽에는 여자 축구 대표팀만 단일팀으로 참가하여 8강에 진출했다. 이처럼 영국의 올림픽 축구 참가는 FIFA에서의 활동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며, 단일팀 구성 문제는 여전히 민감한 사안으로 남아 있다.

한편, IOC는 영국의 해외 영토 중 버뮤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케이맨 제도국가 올림픽 위원회를 별도로 인정하고 있어, 이 지역들은 독자적으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

5. 1. 올림픽 성적

영국1900년 하계 올림픽부터 1972년 하계 올림픽까지 간헐적으로 올림픽 축구에 단일 팀으로 참가했다.[21] 1900년 하계 올림픽에서는 축구가 시범 종목이었으나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가 소급하여 공인했으며, 업튼 파크 FC가 영국 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공식 종목이 된 1908년 하계 올림픽1912년 하계 올림픽에서도 영국은 금메달을 차지했다.[22][23]

월드컵의 인기 상승, 영국 내 네 지역 축구 협회 간의 갈등, 그리고 1974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FA)가 프로 스포츠 선수와 아마추어 스포츠 선수 간의 구분을 폐지하면서 영국 단일 팀의 올림픽 참가는 중단되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예선에는 참가했으나, 이후 오랫동안 본선 무대에 서지 못했다. 1992년부터 프로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되었지만, 각 홈 네이션이 개별적으로 예선에 참가했기 때문에 영국 단일 팀은 출전하지 않았다.

2012년 하계 올림픽런던에서 개최되면서 영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진출권을 얻었다. 잉글랜드 축구 협회 주도로 단일 팀(Team GB) 구성이 추진되었으나, 북아일랜드 축구 협회, 스코틀랜드 축구 협회, 웨일스 축구 협회는 참가를 꺼렸다.[24][25] 영국 올림픽 위원회(BOA)의 조정 끝에 통합팀 구성에는 합의했지만,[40][41] 최종 명단에는 잉글랜드웨일스 선수들만 포함되었다.[42][30] 이 대회 8강전에서 영국은 대한민국과 맞붙어 카디프에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으나, 대니얼 스터리지의 실축으로 패배하여 탈락했다.

FA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통합팀 구성을 제안했지만 다른 협회들의 거부로 무산되었다.[32] 2020년 하계 올림픽에는 여자 축구 대표팀만 단일 팀으로 참가하여 8강에 진출했다.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는 영국의 해외 영토 중 버뮤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케이맨 제도 세 지역의 국내 올림픽 위원회를 별도로 인정하고 있다.

하계 올림픽 기록
년도결과순위경기무*득점실점승점
1900금메달우승1100403
1904불참
1908 (개최국)금메달우승33001819
1912금메달우승33001529
19201라운드11위1001130
1924불참
1928
19368강7위2101653
1948 (개최국)4강4위42029116
1952예비라운드22위1001350
19568강5위21011063
1960조별리그8위3111884
1964예선 탈락[43]
1968
1972
1976불참
1980
1984
1988
1992[44]
1996[45]
2000[46]
2004[47]
2008[48]
2012 (개최국)[49]8강5위4220638
2016불참
2020
2024
합계12회 진출(12/28)금메달(3회)281639864751


6. 기타 국제 경기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등 영국의 홈 네이션스 축구 협회들은 때때로 단일 팀을 구성하여 '유럽 선발팀(Rest of Europe)' 등 다른 팀과 친선 경기를 치렀다. 북아일랜드 선수들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팀은 종종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이름으로 경기에 나섰다.

주요 경기는 다음과 같다.


1920년대 FIFA를 탈퇴했던 홈 네이션스의 FIFA 복귀를 기념하기 위해 '세기의 경기(Match of the Century)'라는 이름으로 열렸다.[2] 스코틀랜드의 햄던 파크에서 135,000명의 관중이 모였으며, 영국 팀은 개최국 협회를 존중하는 의미로 남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경기 수익금 3.5만파운드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던 FIFA에 큰 도움이 되었다.[10]

당시 영국 팀 선수는 프랭크 스위프트 (잉글랜드), 조지 하드윅 (잉글랜드), 빌리 휴즈 (웨일스), 아치 맥컬리 (스코틀랜드), 재키 버논 (아일랜드), 론 버지스 (웨일스), 스탠리 매튜스 (잉글랜드), 윌프 매니언 (잉글랜드), 토미 로턴 (잉글랜드), 빌리 스틸 (스코틀랜드), 빌리 리델 (스코틀랜드)이었다.[11]

득점: 매니언 (22', 33' PK), 스틸 (35'), 로턴 (37', 82'), 카를로 파롤라 (74' 자책골) / 군나르 노르달 (24').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 창립 75주년을 기념하여 벨파스트에서 열렸다. 영국 팀은 북아일랜드의 전통적인 녹색 유니폼을 입었다.

당시 영국 팀 선수는 잭 켈시 (웨일스), 피터 실렛 (잉글랜드), 조 맥도날드 (스코틀랜드), 대니 블랜치플라워 (북아일랜드), 존 찰스 (웨일스), 버티 피콕 (북아일랜드), 스탠리 매튜스 (잉글랜드), 바비 존스톤 (스코틀랜드), 로이 벤틀리 (잉글랜드), 지미 맥길로이 (북아일랜드), 빌리 리델 (스코틀랜드)이었다.[8]

득점: 존스턴 (25') / 장 방상 (27'), 베르나르 부카스 (77', 87', 88').

영국 연합팀은 다른 형식의 경기도 치렀다.

  • '''1939년 11월 4일, 구디슨 파크''': 영국 연합팀 3 – 3 풋볼 리그 대표팀. 적십자사 기금 마련 경기로 1214GBP를 모금했다.[12][13]

  • '''웨일스 vs 나머지 영국 대표팀''': 웨일스 대표팀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선수들로 구성된 '나머지 영국(Rest of the United Kingdom)' 대표팀 간의 경기도 두 차례 열렸다.
  • 1951년 12월 3일, 카디프 니니안 파크: 웨일스 3 – 2 나머지 영국 (웨일스 축구 협회 75주년 기념)
  • 1969년 7월 21일, 카디프 니니안 파크: 웨일스 0 – 1 나머지 영국 (웨일스 공 책봉 기념)[8][14]

  • '''1965년 4월 28일, 스토크온트렌트 빅토리아 그라운드''': 그레이트 브리튼 4 – 6 유럽 선발팀. 전설적인 선수 스탠리 매튜스의 은퇴 기념 경기로 열렸다.[16]


이 외에도 1916년 프랑스에서 열린 Journées du Poilu Sportif 준결승에서 USFSA 대표팀과 영국 대표팀이 0-0 무승부를 기록했고,[19] 1976년에는 앨런 멀러리의 기념 경기에서 스코틀랜드 XI 팀이 나머지 그레이트 브리튼 팀에게 2-3으로 패배한 기록이 있다.[17][18]

참조

[1] 서적 The IFA 125 years...the history Edenderry print limited
[1] 뉴스 Politics of Irish Soccer 1953-11-25
[2] 뉴스 The auld opponent https://www.thetimes[...] 2024-02-16
[3] 뉴스 Red card for Straw's 'British team' idea https://www.theguard[...] 2006-07-05
[4] 웹사이트 GB united or an own goal that will split UK? http://thescotsman.s[...] 2010-02-20
[5] 뉴스 UK football team should be formed, says leading Tory http://www.belfastte[...] 2014-07-11
[6] 뉴스 Tory MP calls for UK football team after England's World Cup failure http://www.heraldsco[...] 2014-07-11
[7] 웹사이트 GREAT BRITAIN'S EASY WIN OVER THE REST OF EUROPE https://www.britishp[...] 2024-02-16
[8] 웹사이트 England Player Honours - International Representative Teams http://www.englandfo[...] 2024-02-16
[9] 웹사이트 Matches of Supranational Representative Teams 1937-1970 https://www.rsssf.or[...] 2024-02-16
[10] 웹사이트 The four British associations return to FIFA after the Second World War: 25th FIFA Congress in Luxembourg in 1946 https://www.fifa.com[...] 2010-02-20
[11] 서적 Football And All That Hodder & Stou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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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문서 영연방의 네 개 협회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월드컵처럼 따로 출전할 것을 건의했지만 거부됨에 따라 '''자국에서 열린 2012년 올림픽 이전까지 52년간 출전을 하지 않았다'''
[44] 문서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45] 문서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46] 문서 모든 연령의 선수 참가에서 23세 이하로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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